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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4-16 15:15
[세월호 5주기] “아이들이 죽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회 깊게 고민했으면”
 글쓴이 : 복송예
조회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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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유예은양 어머니 박은희 전도사의 ‘호소’박은희 전도사가 지난해 4월 안산 교회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4주기 행사 때 진실규명의 필요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화정감리교회 제공

지난 11일 경기도 안산 화정감리교회에서 만난 박은희(49·여) 전도사는 교회 앞뜰에 꽃을 심고 있었다. 모종 화분에는 교회학교 아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박 전도사는 30여분 동안 봉선화와 채송화 10여 송이를 심고 난 뒤에야 입을 열었다.

박 전도사는 참사 당시 딸 유예은(당시 17세)양을 잃었다. 이후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침몰 원인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어렵게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출범했지만, 책임자 처벌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4월만 되면 잊히려 하던 참사 당시의 기억이 선명해진다”면서 “못다 한 숙제가 있는 기분”이라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여전히 세월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잊어가는 사람들의 망각과 싸우고 있다고 했다. 박 전도사는 “많은 분이 함께 아파하고 있지만, 여전히 안산 곳곳에서는 ‘지겹다’는 반응들이 있다”면서 “특조위 일정이 지연되는 등 진실 규명이 좌절되면서 ‘아직도 저러냐’는 반응이 가장 속 쓰리다”고 말했다. 박 전도사와 유가족들은 현재 책임자 처벌을 위한 세월호 전담 수사처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참사 이후 ‘모태신앙 박은희’의 삶도 바뀌었다. 당시 해경은 구조에 나서지도 않았는데 텔레비전에는 ‘총력 구조’라는 자막이 보였다. 그는 좌절했다. “성경에 적힌 수많은 기적은 어디에 있냐고 소리를 질렀다”고도 기억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마음을 바꿨다. 박 전도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도 많은 사람이 그 사실을 모른 척했다”며 “우리의 죄 때문에 죄가 없는 사람들이 죽고 다칠 수 있다. 그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교훈을 세월호로 다시 얻었다”고 말했다.

한국교회는 세월호를 어떻게 다시 기억해야 할까. 박 전도사는 고난에 처한 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예수님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마 6:3)’라는 말씀을 하신 이유는 도움 주는 쪽에 권력이 생기는 것을 경계하라는 의미”라면서 “교회가 단순히 쉽고 잘 보이는 방식으로 유가족들과 함께하기보다는 다시는 아이들이 죽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깊게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박 전도사는 세월호 참사 5주기 당일인 16일 인천 하늘교회에서 열리는 ‘세월호 5주기 기억예배’에서 설교할 예정이다. “4년 동안 함께 기억예배를 드리면서 각자의 마음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게 됐어요. 온갖 망언에 괴롭고 힘들었지만 제가 하나님 곁에 있는 이유입니다.”

안산=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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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NBC 방송과 인터뷰
"운전 중 제 정신 아니었다"
【서울=뉴시스】유엔군 사령부는 2017년 11월22일 오전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최근 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북한 병사의 당시 총격 상황을 담은 CCTV를 공개했다. 귀순 북한 병사 오청성(아래 사진 빨간원)씨가 지프 차량에서 내려 남측으로 달리고 있다. 위쪽 사진은 북한군이 오씨를 향해 사격하는 모습. 2019.04.16. (사진=유엔군사령부 제공)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남빛나라 기자 = 2017년 11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귀순하다 총상을 입었던 북한군 병사 오청성씨가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당일 아침까지도 남쪽으로 가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 NBC는 15일(현지시간) 오씨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상황이 너무 급박했기 때문에 운전 중에 제정신이 아니었다"며 "아주 빠른 속도로 운전하고 있었는데 탈출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또 "엄청나게 무서웠다. 당시 동영상을 가끔 보는데, 볼 때마다 내가 살아있는 게 기적이란 생각이 든다"며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나조차도 믿을 수 없다. 그 영상 속 사람이 나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을 쏜 동료들을 원망하는 마음은 없다고 했다.

그는 "그 상황이었으면 나라도 총을 쐈을 것이다. 우정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나였어도 똑같이 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NBC는 오씨가 탈출하고 2주 후 북한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며 엄밀히 말하면 남북간은 전쟁 상태에 놓여있다고 보도했다.

오씨는 2017년 11월13일 오후 3시31분께 판문점 JSA를 통해 귀순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북한군이 쏜 총에 맞아 복부와 우측 골판, 양팔 다리 등을 크게 다쳤다.

sout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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